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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 처음부터 현재까지(A to Z) 총정리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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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 처음부터 현재까지(A to Z) 총정리 1

호사가 김씨 2022. 10. 26. 15:07

안녕하쇼. 횐님들
김 씨입니다.


지난 대선후보 토론회 기억나세요?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특검으로 밝혀내고 사퇴 콜? 쫄? 로 서로를 공격하던 사안이었는데요.
윤석열 후보가 선거에서 이기고 대통령이 되자 본격적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목을 조일 재료로 이 사건을 쓸 모양입니다.


뉴스를 보면 이해하기가 힘든데요.
시간대도 섞여있고, 등장인물들도 많아서 뭐가 뭔지 따라가기가 영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난 일여 년간 여러 뉴스와 자료들을 봐온 저의 사견과 함께
대장동 사건의 처음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찬찬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완독하고 나면 대장동 사건이 이런 거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게 써볼게요.
좀 자세하게 써보려고 하니까 간단한 거 좋아하시는 분들은 요약본 기다려주세요.(기다리는 사람은 없겠지만)


블로그를 하니까 이게 좋은 것 같아요. 저도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던 걸 정리할 필요를 느꼈거든요.



이 사건은 재밌습니다. 여러 욕망들이 뒤엉켜있거든요.
근데 영화나 소설 속의 엄청나게 복잡한 사건들도 그 원인이 밝혀지고 나면 허무하게 단순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A 씨가 B양을 열렬히 사모해서 C군을 죽였대~"
같이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이 대장동 사건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다 읽어보고 여러분들의 한 문장은 무엇인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재밌을 것 같아요.(아무도 안 남기겠죠?)




자! 한번 가보자고.
먼저 사건 개요입니다.



대장동은?

대장동은 성남시 분당신도시와 판교신도시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남까지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서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향의 개발 시도가 있었으나 공무원들의 투기나 계획 유출, 공영과 민영 개발 계획안의 충돌로 번번이 좌초된 지역입니다.

kbs 뉴스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이란?

이재명 성남시장 재직 시절 있었던 성남판교대장도시개발 사업 당시 사업 이익금 중 상당액이,

1. 어떻게 특정 개인이 지분 100%를 소유한 화천대유라는 민간회사에게 돌아갈 수 있었는지
2. 민간회사에 거액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정관계에서 입김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느 누구의 잘못인지
에 대한 논란입니다.



Chapter 1. 대장동 개발의 시작



대장동 개발 사업의 처음부터 천천히 가보입시더.


2008년 한국 주택공사(LH의 전신)는 대장동 개발 사업을 따내기 위해 성남시에 제안서를 제출합니다. 결과는 반려.2009년에도 또 제안서를 제출하지만 성남시에서 반려. 7월 말 다시 3차 제안서를 제출한 끝에 성남시로부터 공사를 따냅니다.

박대희

근데 LH 가 본격적인 공람 절차를 시작한 지 2일 후인 2009년 10월 7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LH의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로


“ 민간기업이 이익 나지 않아서 일을 안 하겠다는 부분을 LH가 보완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LH는 수익이 나지 않아서 민간기업들이 꺼리는 사업을 중점적으로 맡고 돈 되는 거는 민간기업에 넘기라는 말이었죠.(*여기서 약간 헷갈릴 수도 있는데 LH는 한국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병합되어 2009년에 창설된 조직입니다. 원래 두 공사가 하던 일을 이어받았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부동산의 달인. 현대건설 개발사업부 출신. 나무위키캡쳐

게다가

2009년 10월 20일 열린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의 LH 국정감사에 출석한 당시 한나라당 신영수 의원(성남시 수정구 갑)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하면서 'LH가 중대형 주택시장에 눈을 돌리는 것은 모순이다', '대장동 주민들은 민간에서 추진하자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라고LH 사장을 질타했고 LH가 공공개발을 축소하도록 압박했습니다.


이 무렵 대장동에는 씨세븐(대표 이강길)이라는 부동산 개발업체가 주체가 되어 주민제안사업 방식으로 이곳을 민간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LH와 이곳 대장동을 두고 경쟁 중이었습니다.

씨세븐은 대장지구 땅 880,000제곱미터 약 27만 평에 아파트와 주택 3100세대를 지을 계획이었습니다. 쩐은 부산저축은행이 댔습니다. 서둘러 땅을 확보했고 그 결과 사업계획의 약 77%인 21만 평의 땅을 사들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땅을 확보할 수 있었냐면 대장동 주민들도 처음엔 이곳이 민간개발이 되길 원했다고 합니다. 공공이 들어오는 순간 토지수용이라는 명목으로 한껏 올라있는 땅값을 후려칠 게 분명했거든요. 이제 LH만 물러난다면 이곳은 씨세븐의 차지였습니다. 여기저기 로비를 했습니다. 성남시 국회 의원인 신영수(위에 인물)의 특별보좌관이던 친동생 신동수에게 LH가 사업 추진을 포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1억 5천만 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고, 최윤길 성남시의회 의장에게 1억 원을 전달합니다.



동시에 씨세븐은 인허가를 해결할 자문단을 꾸립니다. 개발 사업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인허가거든요. 이 자문단에 정영학 회계사남욱 변호사가 들어오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은 현재 대장동 사건의 핵심인물들 이니까 잠깐 정리해봅시다.


정영학도시개발 전문가이면서 회계사로 숫자에 강한 사람이었고, 씨세븐의 지주작업(땅주인을 설득해 매매계약·동의를 받아내는 과정)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영학은 도시개발에 대한 책을 낼 정도로 도시개발전문가

남욱2008년 당시 한나라당 중앙청년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어 국회 국토위원회 보좌관들과 친분이 있었고, 변호사라 법률 자문도 가능했기 때문에 영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씨세븐의 바람대로 2010년 6월 LH는 대장동 공공개발 사업에서 철수합니다.


씨세븐이 축배를 들어 올리려던 그 순간,

Chapter 2. 이재명의 등장과 초기 개발세력의 서열정리
하이


2010년 7월 이재명이 성남 시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안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하면서 대장동을 다시 공공 개발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렇게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대출 만기일은 도래했습니다. 씨세븐은 총 1800억 원의 사업비를 저축은행을 통해 빌렸는데 중에 약 1100억 원을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빌렸습니다. 다달이 나가는 이자만 해도 어마어마했을 거예요. 씨세븐의 이 대표는 이 대출의 만기연장을 하지 못하면서 나가리가 됐습니다. 쩐이 없으니까 퇴출당한거죠. 그리고 정영학 회계사와 남욱 변호사는 남아 계속해서 대장동 개발 사업에 관여합니다. 1800억 가량의 저축은행 채무는 씨세븐 대표였던 이 대표가 거의 모두 떠안고, 2011년 8월 즈음 사업권만 남욱 변호사가 갖게 되었습니다. 원래 대가리는 날라가고 설계자들은 살아남았습니다. 남욱이 최종 승자가 된 느낌이었죠. 그 당시에는요.

남욱 변호사는 어떻게 사업권만 갖고 1800억 원가량의 채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명확하지 않지만 대출 만기 두 달 후 채권자인 부산저축은행이 이른바 '저축은행 불법대출' 사태로 대검 중수부의 수사를 받게 됐기 때문에 사업권자인 남욱 변호사와 씨세븐 등에 채무변제를 독촉할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 아닐까 추측합니다.


대검 중수부는 2011년 3월부터 6조 원의 부실을 안고 있던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에 대대적으로 나서는데요. 대검 중수부가 밝힌 수사 사례들을 보면 부산저축은행의 부실 책임이 있는 씨세븐 등도 사법처리됐어야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씨세븐과 남욱 변호사는 사법처리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이때 이 사건의 주임검사가 윤석열 현 대통령이었습니다. 여기가 윤석열과 이재명이 부딪히는 지점입니다. 니가 부실수사해서 대장동 사건이 발생했다 vs 니가 뒤로 돈 먹고 무슨 말이냐..


어쨌든 민간 개발 사업은 물거품이 됐고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는 씨세븐이 전에 해뒀던 지주작업을 토대로 대장동을 민간 개발이 아닌 민관 공영개발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의 최측근 인물로 알려진 유동규 전 성남 도시개발본부장과 인연을 맺습니다. (여기가 이재명이 이 사건과 부딪히는 지점의 시작입니다.)


이 유동규 본부장이 요즘 제일 핫한 사람이죠? (다음 편에 본격적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어쨌든 대검 중수부 수사 3년 뒤 남욱 변호사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저축은행 돈을 빌려 계약한 대장동 토지를 압류하고 있던 예금보험공사가 부산저축은행 사건 부실 대출 건 가운데 수사와 기소가 이뤄지지 않은 씨세븐 대출 건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 것입니다.

수사에 착수한 수원지검은 씨세븐 전 대표 이강길 씨와 자문단 5인(남욱 변호사 포함), 씨세븐에 부산저축은행을 알선한 금융브로커 조모씨, 성남 수정구 신영수 국회의원 특별보좌관의 친동생 신동수 등을 대대적으로 수사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근데 희한하게도 당시 검찰은 이강길씨와 함께 지주작업 등 대장동 개발사업을 벌인 자문단 5명 가운데 4명은 공동피고인으로 기소하면서도 남욱 변호사 사건은 분리해 기소했습니다. 정영학 회계사는 아예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신기방기하죠??

당시 남욱 변호사의 변호인은 박영수 전 특검(네, 맞습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특검. 이 사건은 정치이념보다 돈을 제1의 가치로 놓고봐야합니다. 박영수 특검은 뒤에 또 나옵니다.)이었고, 남욱 변호사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럼 함께 일한 씨세븐의 전 대표 이강길 씨는??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대장동 개발 1세대 이강길 전 대표를 날리고 사업권을 손에 쥐고 있던 씨세븐 2세대 대표 남욱 변호사도 이 시점에 검찰에 구속수사(나중에 무죄를 받긴하지만)를 받으면서 힘이 많이 약해지고, 3세대 핵심인 김만배 회장이 드디어 두두등장하게 됩니다.
김만배.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입니다.






바쁜 분들을 위한 대장동 총정리 1편 요약

1. 2008년 이전부터 대장동을 민간 개발하려는 초기 세력이 있었다.
2. 2008년~2009년 LH는 대장동을 공공개발하려고 노력했고, 성남시의 허락을 받았다.
3. 2009년 민간 개발 세력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의 힘을 빌려 LH의 공공개발을 무산시켰다.
4. 민간 개발이 이루어질 찰나, 2010년 이재명이 성남 시장으로 취임했고 다시 공공개발로 되돌리겠다고 했다.
5. 초기 세력들 내부에서도 서열 정리가 있었다.




후..

여기까지 잘 따라오셨나요?
저 이제 디저트 구우러 갈 시간이라 그만 쓸려고 하는데요. 빠른 시일 내에 2편을 업로드해보도록 할게요.


다음 편은 이제 본격적으로 대장동을 두고 민간 개발 vs 이재명의 갈등과
대장동의 배후는
현재 국힘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와 토건세력 vs 이재명 중 누구인지
서로를 지목하면서 아수라장이 된 이 사건을 더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럼 20000




*출처
2021.10.18 경기도 국정감사
kbs 시사기획 창 대장동게임
김현정 뉴스쇼 2021.10.01 방송
뉴스버스 윤진희 기자 - '대장동 사업은 토건 하이에나들의 '오징어 게임'이었다.
한겨례 정한봉 기자 - ‘대장동 원조 개발업자’가 말하는 남욱·정영학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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